[연애 칼럼] 상대가 바람을 피워도 헤어지지 못하는 심리

예전에, 상담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만해도 바람 피면 당연히 헤어지지 어떻게 계속 사귈수가 있냐고 생각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을 당하면서도 계속 같이 살아주는 사람들이 신기했습니다.

이제와서 보면, (데이트폭력의 경우에는 헤어지지 않는게 아니라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예외로 두더라도) 바람 피워도 계속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건 가정폭력을 당해도 가정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이유였습니다. 즉, 상대방이 날 배신하고 상처주더라도 (심지어 목숨을 위협하더라도) 헤어짐이라는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거죠.

​2023년 2월 자체조사한 설문조에서, 헤어짐에 대한 고민이 무려 연애고민 2위를 차지했습니다.

2023년 2월 연애고민에 대한 자체 설문조사(256명 참여)
관계 끝내기는, 관계 시작하기보다 어렵나봅니다.

​일반적인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상대가 바람을 피워도 헤어지지 않는 사람 심리

1. 유일한 애착대상: 이 사람 없으면 난 못 산다.

애착이란 정서적으로 붙어있다는 뜻이지만, 사실 그것보다 좀 더 심오하고 강력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애착은 갓난아이가 양육자에게 착 달라붙어 모든 것을 의지함으로써 생존하려는 본능을 뜻합니다. 갓난아이는 양육자가 없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애착대상인 양육자는 세상 그 자체입니다.

​나의 반쪽이라는 말이 있죠. 깊은 사이가 된 커플들이 많이 하는 말인데, 애착은 겨우 반쪽 정도가 아닙니다. 애착은 세상이고 생존입니다.

​애착이 형성되면 애착대상은 내 생존이 달린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애착대상이 떠나면 세상이 끝나고 나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청소년만 되어도 스스로 살 수 있으니, 애착 대상이 사라졌다고 진짜 신체적으로 죽지는 않겠죠. 대신, 정서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경험할까봐, 이 애착대상이 나를 배신하고 상처 입히고 목숨을 위협해도 떠나질 못하는 겁니다.

이렇게 죽음을 운운하니 좀 오버하는 것 같나요?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애착을 한 명에게만 형성하진 않습니다. 부모와의 애착이 남아있고, 친구들도 있고, 나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애착, 다른 말로 ‘건강한 자아’가 형성되죠. 나 스스로도 살아나갈 수 있기에 연애 대상에게 생존을 의지할 만큼의 애착을 형성하진 않게 됩니다.

그런데 종종 혼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를 비롯한 다른 사람과의 애착이 별로 형성되어 있지 않고, 여러가지 이유로 자아가 건강하지 않은 상태면, 연애상대이 유일한 애착대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완전히 의존하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연애상대가 바람을 피면 헤어지질 못하게 됩니다. 배신감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단 덜 하니까요.​

2. 외로움에 대한 공포: 혼자가 되는게 더 무섭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회적 동물은, 원시시대에 혼자가 되면 맹수의 습격을 받아 죽게 됩니다. 이러한 본능을 갖고 있는 인간에게 고독, 즉 외로움은 죽음과 같은 공포를 줍니다.

외로움은 아무 자극이 없는 겁니다. 사람은 자극이 없으면 미칩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자극이라도 찾아서 느끼려고 합니다. 이런 본능은 방임 된 어린아이가 문제아가 되어 부모의 관심을 받으려고 하는 행동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관심조차 주지 않으니까, 부정적인 관심이라도 받으려구요.

​외로움은 그정도로 무섭답니다.

그래서 바람 피운 사람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낫다고, 무의식이 그렇게 판단하고 헤어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외로움의 공포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행동이 환승연애입니다. 의지할 대상이 사라진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사람이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다음 사람을 찾아서 안정감을 유지하려고 하지요.​

3. 미지의 공포: 익숙한 고통이 낯선 편안함보다 낫다.

​혹시 바람피우는 상대를 만난 게 한 두 번이 아닌가요? 그리고 매번 그 바람피운 대상과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가려고 했나요? 어렵게 새로 만났는데 싹수가 노랗더니 결국 바람을 피어버리던가요? 그럴 때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왜 맨날 이래?”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이 경우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건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주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없어졌을 때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그게 편할지는 모르지만, 과연 내가 그게 가능할까?

완전 낯선 곳에 홀홀단신으로 버려지는 느낌이 들 겁니다. 그건 앞서 말했던 것처럼, 기존 애착대상이 적으면 적을수록, 미지의 공포는 더 크게 느껴질겁니다. 유일한 애착대상이라면 말할 것도 없구요.

바람을 피우거나 나에게 신체적, 정서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오래 만나면 만날수록 고통에 익숙해져버립니다. 그래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뭐든 심각해지기 전에 조기에 예방하는게 최고인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4. 허약한 자아와 낮은 자존감: 나는 이런 취급 받아도 어쩔 수 없다.

​우리 몸이 항상 건강할 수 없듯, 사람의 심리도 자아도 항상 건강할 순 없습니다. 종종 자아가 아프거나 허약해졌을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여 회복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허약해졌을 때와 맞물려 바람피는 일이 발생하면, 헤어지기 참 어렵습니다.

게다가 잠깐 허약해진게 아니라 원래 허약체질인 자아였다거나,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자존감이 대폭 낮아진 상태라면? 이런 자아상이 생깁니다.

​”나는 부족하고 가치가 없다”
“나같은 사람을 좋아해줄 사람은 이 사람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취급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자기자신을 소홀하게 대하게 됩니다. 바람피는 사람은요, 그렇게 자존감 낮은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심지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답니다.

“나는 바람 피워도 너는 바람피지 마”
“나는 계속 바람 필건데, 너와도 사귈거야. 너가 감당해”

자아가 허약할 때는 위에 말씀드린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 1, 2, 3번이 쓰리콤보로 멘탈을 강타하면서,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진짜 정서적으로 죽을까봐 헤어지지는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5. 나쁜 평판에 대한 공포: 헤어지면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보겠어?

​특히 이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사회에서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가 바람을 피워도 여자는 참고 살아야한다는게 국룰인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가해자가 아닌 생존자인 내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할거라는 공포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어요. 심지어 지금 50대인 분들 중에 성폭행 당했다는 이유로 성폭행범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말도 안된다구요? 진짜 있어요.

​여러분. 성폭행 당한 사실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닐 수 있나요? 당연히 못하죠. 왜냐하면, 성폭행 생존자(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폭력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자는 절대절대절대 말 못해요.

사회적 인식, 평판은 사람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큰 조직에서 생존하는 분들이나 이미지가 중요한 분들이라면 아마 다 아실거에요.

큰 조직은 평판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악플, 여러 사람이 쓴 수 많은 악플은 진짜 사람을 죽입니다.

​나의 가족, 친구들, 나아가 내 상상 속의 주변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과 헤어지거나 이혼한다는 이유로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거라는 믿음은 엄청난 공포입니다.

​사회적 동물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면, 나쁜 평판은 집단에서 퇴출시키는 것을 의미하고(또는 왕따시키는 것을 의미), 그렇게 되면 맹수에게 잡아먹히게 됩니다. 즉,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게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내커플이나 CC가 헤어지기 어려운 것도, 100% 사회적 평판이 문제는 아니겠지만 신경이 더 쓰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헤어짐은 생각보다 무섭고 어렵고 복잡한 과정입니다.

그래서 “변할거야”, “다신 안 할거야”라는 말을 믿고 희망을 갖고 상대에게 기회를 더 주게 됩니다. 물론 기회를 더 주었을 때 다시는 바람 안 피고 잘 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바람핀 대상과 헤어질지 헤어지지 않을지는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선택일 뿐이죠.

다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 관계가 스스로에게 정말 건강하고 충족감을 주는 관계인지 판단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선택의 기준은 나의 안녕입니다.
계속 만나는 것, 헤어지는 것
어느 쪽이 나에게 더 건강한 선택인가요?

판단을 했을 때 헤어지는 것이 맞다면,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헤어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보세요.

​1.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다른 사람과의 애착을 되살리세요.

다른 사람과 애착이 형성되면, 바람 핀 상대와의 애착이 약해집니다. 그럼 헤어지기 훨씬 쉬워져요.

​2.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강력한 노력을 기울이세요.

죽음의 공포를 이기려면 웬만한 노력으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거에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어떻게 하나요? 좋아하는 것을 해주고, 잘 먹이고 재우고 입히지 않나요? 데리고 놀려다니고, 즐겁게 해주지 않나요? 나에게 스스로 그걸 해주면 됩니다.

3. 심리상담사는 강력한 아군입니다.

혼자가 될 거라는 공포를 느낄 때가 바로 내 편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심리상담사는 당신의 강력한 아군이 되어 줄 겁니다.

바람핀 사람 두고 혼자 상담을 받으세요. 가아끔 내 편 안들어주는 상담사도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은 중립을 지킬지언정 편파적으로 상대방 편을 들어주진 않을겁니다. (단, 커플상담은 제외입니다. 커플상담은 헤어지기 싫은 때 받는 상담입니다. 커플상담에서는 상담사의 ‘중립!’이 중요합니다.)

심리상담사와 상담하면서 낮아진 자존감을 높이고, 자아의 건강을 되찾으세요.

상담사를 만난다는 것은 혼자가 아닌 둘이 됨으로써 외로움이라는 공포가 옅어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또, 함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미지에 대한 공포를 완화할 수도 있어요. 나쁜 평판을 이겨낼 힘도 얻을 수 있죠.

* 심리상담사 고르는 팁

​1. 자격증 확인: 전문상담사, 상담심리사, 임상심리전문가, 이 세 가지가 가장 믿을만합니다. 자격명이 심리상담사 아니고 상담심리사입니다. 그 외 괜찮은 예술치료사도 많이 있는데, 이건 자격증이 너무 다양해서 뭐라고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2. 나와 코드가 맞는지 보기: 만나보기 전에는 몰라요. 1~2회기 정도 해보고 잘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바꾸세요. 실력도 중요하지만 일단 나와 코드가 잘 맞아야 편하게 상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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